<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꾸었던 꿈을 모티브로 안견이 아름답게 재현해낸 작품으로,
안평대군의 시와 안견의 몽환적인 그림과 그것이 그려지기까지의 스토리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더욱 사랑을 받고 있는 명작이다.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이용(1418~1453)이다.
세종대왕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예술적 소양이 깊었고, 그림이나 글씨를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시문에도 뛰어난 풍류가였다.
특히 중국회화를 주로 수집하였는데, 고개지, 오도자, 왕유, 곽충서,이공린,소동파,곽희, 조맹부 등
30여명의 작품을 소장했다.
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화가인 안견의 작품이 30점 포함되어 있어,
안평대군이 안견을 얼마나 각별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안평대군은 1453년 36세에 계유정난으로 그의 형인 수양대군의 손에 죽게 된다.
그의 죽음 이후 소장품은 모두 몰수되었거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견은 본관은 지곡이며, 낮은 신분 출신의 화원으로 정4품의 벼슬 호군까지 오른 뛰어난 화가이다.
태어나고 죽은 때가 정확하지 않으며,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안평대군의 깊은 신임을 받았고, 1447년 안평대군을 위하여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으며, 초상화, 사군자, 의장화 등에도 능했다.
<사시팔경도>, <소상팔경도>, <적벽도> 등이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1447년 서른 살이 되던 해 여름날에 꾼 꿈을 안견이 비단에 그림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안평대군이 꿈에 박팽년과 함께 복사꽃이 만발한 골짜기에 도달하였고, 갈림길에서 한 노인이 길을 안내하여,
그 길을 따라 가니 안개 자욱한 마치 신선이 살 듯한 도원이었다.
그곳을 거닐며 즐거웠던 마음을 이야기하여, 안견에게 그리게 명하였고,
사흘 뒤 안견이 그것을 비단에 그림으로 완성하게 된다.
안평대군 또한 안견의 그림을 매우 만족하여 3년 뒤 직접 시까지 남기게 된다.
이 세상 어느 곳이 꿈에 본 도원인가.
시골 사람 옷차림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그림으로 두고 보니 참으로 좋을씨고
자부컨대 천년을 넘어 전해지리라
옛 꿈을 꾼후 삼년이 지난 해(1450) 정월 어느 밤
차지재에서 다시 펼쳐보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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