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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6

황금과 에로티즘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빈 교외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금속 조각가인 어머니 안나와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금세공사이자 판화가인 아버지 에른스트 클림트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형제 중 둘째였습니다. 1876년 10월, 구스타프는 빈 응용예술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에는 동생인 에른스트까지 입학하여 함께 수학했습니다. 구스타프와 동생인 에른스트 클림트는 1883년 학교를 졸업한 후 동료 화가 프란츠 마치와 함께 독자적인 스튜디오 쿤스트러 컴퍼니를 설립하고 공공건물에 벽화 그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곧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스위스, 발칸 국가 전체에 홍보를 하고 주문을 받았습니다. 1886년 쿤스트러 컴퍼니는 첫 번째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빈에 새로 건설된 부르크.. 2023. 1. 27.
미완의 강렬함. 윤두서 <자화상> 윤두서의 은 강렬하다. 한 번 보면 오랫동안 잔상이 남을 만큼 인상적이어서, 그대로 뇌리에 각인된다. 윤두서의 본관은 해남, 자는 효언, 호는 공재이다. 윤선도의 증손이며, 그의 아들은 윤덕희, 외손자가 다산 정약용이다.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서생활로 일생을 보냈다. 시/서/화에 두루 능했고, 유학/경제/지리/의학/음악 등 다방면에 능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태어난 지 이레 만에 큰집에 입양되어 자랐으며, 15세에 혼인하여 2남 1녀를 낳았으나, 22세에 부인이 죽었다. 27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27세에 양아버지가 죽고, 29세에 셋째 형이 당쟁에 휘말려 귀양 갔다가 이듬해 죽었다. 30세에 큰형과 함께 모함에 연루되어 고생하였고, 그 후 벼슬을 뜻을 아예 버리게.. 2023. 1. 27.
꿈의 이상향을 그리다! 안견 <몽유도원도> 는 안평대군이 꾸었던 꿈을 모티브로 안견이 아름답게 재현해낸 작품으로, 안평대군의 시와 안견의 몽환적인 그림과 그것이 그려지기까지의 스토리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더욱 사랑을 받고 있는 명작이다.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이용(1418~1453)이다. 세종대왕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예술적 소양이 깊었고, 그림이나 글씨를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시문에도 뛰어난 풍류가였다. 특히 중국회화를 주로 수집하였는데, 고개지, 오도자, 왕유, 곽충서,이공린,소동파,곽희, 조맹부 등 30여명의 작품을 소장했다. 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화가인 안견의 작품이 30점 포함되어 있어, 안평대군이 안견을 얼마나 각별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안평대군은 1453년 36세에 .. 2023. 1. 27.
취옹 김명국 <달마도> 붓끝에 혼을 담다. 조선시대 화가 김명국이 그린 달마는 가장 유명한 달마도 중 하나다. 힘찬 먹선 몇 개만으로 강렬한 인상의 달마를 표현하고 있다. 김명국(1600~1662년 이후)은 조선시대 천민 출신의 화원이었다. 성품이 호탕하며, 술을 매우 좋아했다. 그의 별호가 '취한 늙은이'라는 뜻의 '취옹'인 것만 보아도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알만하다. 김명국은 술을 마신 후 붓을 잡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래서 그의 그림을 얻으려는 자들은 술상을 마련해야만 했다고 한다. 김명국은 도화서 화원을 거쳐 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례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으로 조선은 통신사를 통해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일본인들에게 과시하고.. 2023. 1. 27.
단청의 기원과 목적 단청은 목조건물에 다양한 색과 무늬를 그려넣어 장식한 것으로 흔히 옛 궁궐이나 사찰 건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단청은 오행설에 따라 청,적,황,백,흑 색을 기본으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문양을 그려넣어 건물을 장식하며, 더불어 목조건물의 나무가 비바람에 썩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통 건물의 성격에 따라 사찰에는 금단청, 궁궐에는 모로단청, 서원에는 긋기단청을 하였다. 단청이 언제부터 한국의 건축에 적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채색된 구조물이 그려져있고, 당시 건물에도 색이 칠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 시대에 단청이 건물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고분벽화로 남아 있는 것보다 앞서 지상건물의 단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면, 적어도 A.D. 2세.. 2023. 1. 26.